역사는 과거지만 우리가 있는 현재와 나아갈 미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외식 산업에서 내려오는 전문적인 지식은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 우리의 요리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고 다듬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발전과 혁신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지를 도와준다.
요리 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배울 점은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요리 방법들은 백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셰프의 노력의 결과에서 온 것이다. 요리는 예술만큼 과학과 가까운 기술이다. 요리 기술은 옛날 몇몇 셰프들이 임의로 만들어온 법이 아니다. 그들은 식재료들이 어떻게 많은 방법으로 열에 대해 반응하는지, 여러 다른 순서대로 넣었을 때의 반응과 다른 화학반응들을 이해하고 있다. 과거의 셰프들은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기술들을 이미 해보고 경험해 왔다.
이 말은 우리가 더 이상 발전해야 할 것도 실험해봐야 할 것도 없다는 게 아니고 또한 옛 아이디어들을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많은 지식이 모아져 왔고 우리가 배운 것들을 좀 더 유리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옛날 아이디어들을 알면서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까? 지식은 혁명의 좋은 시작점이다.
클래식과 모던 퀴진의 기원
군인과 같은 많은 사람이 속해있는 집단을 위해 대량 취사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현대 외식 산업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식품의 생산은 길드(guilds)에 의해 움직여왔다. 식품 공급자, 제과사, 로스터, 돼지 도축사들과 같은 직업은 면허가 있어야 특정한 재료를 손질할 수 있었다. 여관의 주인들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재료를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구매해야 했다. 그 이유로 손님들은 좋든 싫든 그날 준비된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1765년, 파리 사람인 불랑제는 수프를 파는 그의 가게를 레스토랑(restaurants/restoratives)이라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직역하자면 강화제라는 뜻이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팔던 요리 중 하나는 크림소스를 곁들인 양족이 있었다고 한다. 스튜를 만드는 길드였던 한 사람이 그를 고소했지만 크림소스에 끓인 것이 아니라 같이 플레이팅 한 것이라는 이유로 승소했다. 길드의 법에 도전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외식 산업에 과정을 바꾸어놨다.
새로운 음식 산업의 발전은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권위가 있는 셰프들은 프랑스 왕족의 집에 채용되어 일을 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끝이 난 군주제에 많은 셰프가 거리로 나왔고 파리 주변으로 그들만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더 나아가 혁명 정부는 길드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레스토랑과 여관의 셰프들은 식품 공급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재료를 구하고 그들만의 재능과 아이디어로 저녁을 제공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과 함께 50개의 식당이 문을 열었고 10년 후에는 500개 정도의 식당이 생겨났다.
또 다른 중요한 발견은 18세기에 난로나 텃밭과 같은 것들이 주방에 들어오면서 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주방의 구조를 바꾸어놓았다. 곧 상업적인 주방은 세 파트로 나뉘게 됐다: 로티세리는 고기를 다뤘고, 또는 로티셔(오븐)은 제과나 제빵사, 레인지는 요리사인 퀴진너들이 있었다. 로티세리와 제과, 제빵사들은 head of kitchen이란 뜻을 가진 chef de cuisine에게 보고했다.